툴루

전날 카르멜리트 예배당의 푸른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참을 머물렀던 여운은 다음 날까지도 천천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도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툴루즈에 머무는 동안 점점 익숙해진 것이 하나 있다면, 어디를 꼭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시간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아침을 느긋하게 보내고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았다. 전날 비에 씻긴 공기는 한층 투명했고, 햇살은 부드럽게 도시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내 중심가 쪽으로 걸어갔다.


툴루즈 중심부에는 생각보다 공원이 많았다. 도심 한가운데인데도 나무가 울창했고, 조금만 걸어도 초록빛 그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은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공원들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공원에는 관광객보다 동네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잔디밭을 뛰노는 아이들.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고, 멀리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풍경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벤치에 잠시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공원을 나와 다시 걷다가 딸아이가 한곳을 가리켰다.
“여기가 생텍쥐페리 공원(정확히는 Jardin Royal) 이야."
순간 반가운 이름에 걸음을 멈췄다.

"Statue d'Antoine de Saint-Exupéry et du Petit Prince"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 동상)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본 『어린 왕자』의 작가, Antoine de Saint-Exupér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공원은 크지 않았지만 아늑했다. 나무들은 적당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고,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관광 명소라기보다 동네 사람들이 사랑하는 쉼터에 가까운 곳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공원을 걸었다.
생텍쥐페리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비행사였다. 젊은 시절 그가 몸담았던 항공우편 회사의 중심지 역시 이곳 툴루즈였다. 밤하늘을 가르며 편지를 실어 나르던 비행기들, 그리고 그 속에서 품었던 꿈들이 훗날 『어린 왕자』의 이야기로 이어졌을 것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니 그의 이야기가 조금 더 가까이 느껴졌다.

툴루즈의 하늘을 가장 툴루즈답게 만드는 비행기, 벨루가.
생각해 보면 우리가 툴루즈를 찾게 된 이유도 결국 하늘 때문이었다.
딸은 런던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은 Airbus 에어버스로 파견 나와 있었다. 처음 툴루즈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어디에 있는 도시인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파리나 니스처럼 익숙한 도시도 아니었고, 여행지로 자주 들어본 곳도 아니었다.
그저 딸이 잠시 머무는 도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툴루즈는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었다. 붉은 벽돌 건물들이 이어지는 골목과 Garonne River 가론강의 풍경, 느긋한 카페들, 그리고 곳곳에 자리한 작은 공원들까지. 관광지보다 일상이 더 매력적인 도시였다.
며칠 전에는 딸이 멀리서 에어버스 건물을 가리켜 주었다. 보안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넓게 펼쳐진 건물들을 바라보며 괜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세계 곳곳의 하늘을 나는 비행기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그 안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을 딸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문득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다.
생텍쥐페리가 하늘을 날며 꿈을 이야기했던 도시에서, 오늘날 누군가는 또 다른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 과거의 비행사와 현재의 항공 기술자들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이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툴루즈는 우리에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이 살아가는 도시를 걸어보고, 딸이 매일 바라보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 이번 여행은 관광보다 그런 의미가 더 컸다.
점심 무렵에는 근처 빵집에 들러 바게트 하나를 샀다. 프랑스에서는 이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거창한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갓 구운 바게트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우리는 종이봉투를 들고 천천히 걸었다. 걷다가 한 조각 뜯어 먹고, 또 조금 걷다가 한 조각 더 뜯어 먹었다. 겉은 바삭했고 속은 촉촉했다. 아주 단순한 빵인데도 이상할 만큼 맛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햇살 아래 앉아 시간을 흘려보냈다. 우리도 그들처럼 잠시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다.
오후가 깊어질 무렵 시장 근처를 지나는데 탐스럽게 쌓여 있는 체리가 눈에 들어왔다. 진한 붉은빛이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한 알을 맛보니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결국 우리는 체리를 한 봉지 가득 샀다. 봉투를 들고 걸어가는데 괜히 마음까지 풍성해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딸아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고 식탁 위에는 와인잔도 놓여 있었다.
우리는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 놓았다. 어느 공원이 가장 좋았는지, 생텍쥐페리 공원의 나무 그늘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시장에서 사 온 체리가 얼마나 달았는지까지.
창밖으로는 늦은 저녁 햇살이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지 않았다. 공원을 걷고, 바게트를 나눠 먹고, 체리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하루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마 그날 우리는 툴루즈를 여행한 것이 아니라, 딸이 살아가는 하루를 함께 걸어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딸이 매일 바라보는 하늘과 거리, 공원과 카페를 천천히 따라 걸으며 우리는 잠시 그 도시의 일상이 되어 보았다.
그래서 그날의 툴루즈는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기억 속에 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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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여행 3화 | 툴루즈, 천천히 걷다 마음이 멈춘 곳
천장을 올려다보던 날, 그리고 햇살이 머물던 오후전날 알비를 다녀온 뒤라 몸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마음만은 아직 어제의 여유로운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 오래 걷고 오래 머물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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