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을 올려다보던 날, 그리고 햇살이 머물던 오후

전날 알비를 다녀온 뒤라 몸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마음만은 아직 어제의 여유로운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 오래 걷고 오래 머물렀던 순간들의 여운이 아직 마음 한편에 조용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일이면 바쁘게 출근 준비를 했을 딸아이가 그날은 우리보다 먼저 일어나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뒤 식탁 위에는 따뜻한 아점이 차려졌다. 갓 구운 바게트와 커피, 간단한 음식들이 하나둘 놓였다.

 

창문 밖은 아침부터 흐렸다.
하늘은 옅은 회색 구름으로 덮여 있었고, 가느다란 빗방울이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고 있었다.
남프랑스의 햇살 대신 빗물에 젖은 거리 풍경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서둘러 어딘가 가야 한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는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젯밤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딸아이의 일상 이야기, 그리고 여행 중에 느꼈던 사소한 것들까지.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느긋하게 집을 나섰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오늘은 어디를 꼭  한다는거 보다, 그냥 걷다가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골목은 비를 살짝 머금고 있었다.

젖은 돌바닥은 은은하게 빛났고, 처마 끝에서는 아직 작은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천천히 중심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툴루즈에서는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딸아이는 익숙한 길을 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있었지만, 우리 눈은 자꾸 골목과 창문 사이에 머물렀다.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졌고, 창문마다 작은 화분들이 걸려 있었다.

어디선가 잔잔한 음악이 들려왔고, 열린 창문 사이로는 갓 내린 커피 향이 골목 사이를 천천히 채우고 있었다.

 

툴루즈는 걷는 사람을 자꾸 멈춰 세우는 도시였다.
걷다가 예쁜 창문을 보면 멈추고, 골목 끝으로 보이는 장밋빛 벽돌 건물을 바라보다 또 멈췄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가 툴루즈의 카르멜리트 예배당 앞에 서게 됐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칠 뻔했다.
화려한 성당처럼 높은 첨탑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곳도 아니었다.
겉모습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여기 한번 들어가 볼까?”

 

별 기대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걸음 걷다가 우리 둘은 동시에 멈춰 섰다.

 

순간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시선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천장 전체가 그림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걷던 골목도, 사람들 소리도, 바깥의 흐린 하늘도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높은 천장 위로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들이 마치 하늘처럼 펼쳐져 있었다.
오래전 화가들이 닫힌 천장을 열린 하늘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착시 기법이라고 했다.
푸른색과 금빛이 섞인 그림 사이로 천사들이 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구름 사이 어딘가 다른 세계가 열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푸른빛이었다.
밝고 선명한 하늘색이라기보다 조금 더 깊고 차분한 푸른색.

 

그 색은 단순히 천장 위에 칠해진 색처럼 보이지 않았다. 공간 전체를 천천히 감싸고 있었다.

벽을 따라 스며들고, 들어오는 빛과 섞이고, 조용히 우리 곁까지 내려오는 것 같았다.

 

신기한 건 색인데도 온도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따뜻하거나 차가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조금 느리게 만드는 온도.

 

크고 웅장한 성당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압도감과는 조금 달랐다.

높은 첨탑과 거대한 규모로 시선을 붙잡는 대신, 이곳은 조용히 마음을 움직이는 곳 같았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게 하고, 잠시 아무 생각 없이 머물게 만드는 곳.

 

처음에는 그저 예쁜 천장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건 그것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래전 화가들은 천장을 단순한 천장이 아니라 끝없이 열린 하늘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어 했다고 한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잠시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곳에 서 있으니 정말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열린 하늘 아래 서 있다는 기분에 더 가까웠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현실보다 조금 느린 다른 시간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예배당을 나와 다시 골목으로 걸어 나왔다.
잠시 고요한 공간 안에 머물렀다가 나오니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조금 전까지 흐리던 하늘도 천천히 밝아지고 있었다.

 

툴루즈의 오후는 참 이상했다.
언제 비가 왔나 싶을 만큼 맑은 햇살이 골목과 건물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따뜻했지만 덥지 않았고, 바람은 천천히 지나갔다.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는 날씨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론강 쪽으로 걸어갔다.

 

강가에는 평범한 하루의 풍경들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 손을 잡고 걷는 가족도 있었고, 앞서 뛰어가는 애완견을 바라보며 웃는 사람도 있었다.

유모차를 밀며 나란히 걷는 젊은 부부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바라보게 되는 풍경이었다.

우리도 작은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무엇을 봤는지보다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날이 딱 그랬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유명한 관광지를 더 많이 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천장을 올려다보던 시간, 푸른빛 아래 잠시 멈춰 있던 마음, 햇살 아래 천천히 식어가던 커피 한 잔의 온도.

 

툴루즈에서는 모든 것이 조금 느렸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지나치고 있던 시간까지도 다시 천천히 바라볼 수 있었다.

 

강가에서 한참을 머물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집에서는 딸아이가 저녁을 준비해 놓기로 했다. 오늘은 와인도 함께 마시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뜻한 햇살이 아직 골목 사이에 남아 있었고, 하루가 조금 더 길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여운을 그대로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여행 정보 | 카르멜리트 예배당 (Chapelle des Carmélites)
- 입장료 : 예배당 관람 무료 / 공연은 별도 티켓 구매
- 추천 관람 시간 : 20~30분 + 공연 관람 시 약 1시간

-  운이 좋다면 예배당에서 작은 음악회나 현악 연주를 만날 수도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가장 먼저 천장을 올려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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