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리 여행 셋째 날
이날은 아침부터 조금 서둘렀다. 폼페이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폼페이는 하루에 다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뿐이었다.
B&B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면 늦을 것 같아 아예 아침도 건너뛰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조금 꼬였다.
폼페이 가는 길, 기차를 잘못 끊었다
딸아이가 기차편을 알아보고 집 근처 역에서 표를 샀는데, 중간에 내려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어디에서 갈아탔는지는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중간 역에서 내려 다음 기차를 기다리게 됐다.
마침 역 근처에 작은 카페가 있어서 들어갔다. 아침도 먹지 않고 나온 터라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빵도 하나씩 먹었다.
그런데 그 빵이 꽤 맛있었다.
크루아상처럼 생겼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여행 중에 먹은 음식은 이상하게 이런 사소한 것들도 기억에 남는다. 유명한 맛집에서 먹은 음식보다 우연히 들른 곳에서 먹은 빵이 더 오래 기억날 때도 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다시 기차를 기다렸다.
나중에 딸아이가 기차편을 다시 확인하더니 하는 말.
"이거 그냥 한 번에 가는 기차도 있네?"
ㅎㅎㅎ
그래도 덕분에 예상하지 않았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우리 여행의 한 장면이었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던 나폴리 근교 풍경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해안선을 따라 집들이 이어지고, 작은 마을과 항구처럼 보이는 풍경들이 하나씩 지나갔다. 나폴리 시내를 벗어나니 주변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폼페이에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창밖 풍경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폼페이에 도착했다.


지금의 폼페이를 지나 2천 년 전 도시로



폼페이역에서 내려 유적지 쪽으로 걸어갔다.
유적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는 폼페이시가 이어졌다.
주택도 보이고 식당과 상점도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도시의 모습이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약 2천 년 전의 도시가 남아 있다니.
그렇게 현재의 폼페이를 지나 유적지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또 한 번 놀랐다.
'이게 정말 2천 년 전 도시라고?'
눈앞에 펼쳐진 돌길과 건물의 흔적이 생각보다 너무 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2000천년 전에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산의 분화로 화산재와 화산 쇄설물에 묻힌 도시다.
그 덕분에 당시의 집과 도로, 상점,공공건물 등 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
오기 전에는 그저 화산에 묻힌 오래된 도시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사람들이 살던 집도 있고, 상점도 있고, 목욕탕과 음식점도 있었다.
사람들이 먹고살고 장사를 하고 길을 오가던 곳이었다.
2천 년 전에도 이곳에는 평범한 일상이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폼페이의 길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길이었다.
돌을 깔아 만든 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길 가장자리에는 보행 공간도 있었다.
돌길 곳곳에서는 물이 빠져나가도록 만든 배수시설도 볼 수 있었다.
걸으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이게 정말 2천 년 전이라고?'
물론 지금의 도로처럼 반듯하고 편한 길은 아니었다. 돌길이라 발바닥에도 꽤 부담이 갔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이 길을 실제로 걸어 다녔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폼페이 전체 면적은 약 66헥타르라고 한다. 평수로 바꾸면 거의 20만 평에 가까운 규모다.
직접 걸어보니 왜 하루 만에 다 보기 어렵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딸아이는 지도를 들고 앞에서 계속 우리를 이끌었다.
"여기 먼저 가자."
"엄마, 이쪽이야."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아가는 딸아이 덕분에 우리는 뒤에서 따라다니며 구경만 하면 됐다.
이번 여행에서 딸아이가 거의 우리 전담 가이드였다.
생각해 보면 참 편한 여행이었다.
원형경기장을 나오며 바라본 베수비오산
처음에는 입구 왼쪽에 있는 전시 공간을 둘러보다가 원형경기장 쪽으로 갔다.
원형경기장은 폼페이의 동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직접 가보니 규모도 꽤 컸다.
그곳에서 유적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뒤쪽으로 시선이 갔다.
베수비오산이 보였다.
마침 산 정상에 구름이 걸려 있었다.
구름이 산머리에 걸린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폼페이에 와서 직접 그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느낌이 조금 달랐다.
저 산의 분화 때문에 바로 이곳에 있던 도시가 묻힌 거니까.
사진을 찍고 한참 산을 바라봤다.
평소에 다른 곳에서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인데, 이곳에서는 자꾸 눈길이 갔다.
저 산 때문에 이 도시의 시간이 멈췄구나.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조금 전까지 그냥 오래된 돌길로만 보이던 것들도 다르게 보였다.
이 길을 사람들이 걸었고, 이 집에서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저곳에서는 물건을 사고팔았겠지.
그렇게 생활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 도시를 떠나거나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사람들이 살던 길을 걷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더 놀라웠다

폼페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집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집 안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고, 벽에는 아직 색이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도 보였다.
바닥에 타일 모자이크가 깔려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이런 화려한 장식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했던 모습이었다.
물을 사용하고 저장하던 시설도 있고, 배수시설과 화장실도 있었다.
주방처럼 보이는 공간도 남아 있었다.
2천 년 전이라고 하면 왠지 불편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막상 눈앞에서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꽤 달랐다.
물을 사용하고, 음식을 만들고, 집을 꾸미며 살아가던 모습이 지금의 생활과 아주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2천 년 전에도 낙서를 했다고?

딸아이의 뒤를 따라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마침 미국인 관광객들이 모여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원래 해설을 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사람들이 길을 막고 있는 덕분에 우리도 함께 설명을 듣게 됐다. ㅎㅎㅎ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곳은 당시 술과 음식을 팔던 곳이었다.
벽에는 낙서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름을 적어놓은 것도 있고, 사랑에 관한 글이나 농담, 욕설처럼 지금 사람들이 남기는 낙서와 비슷한 내용도 있단다.
주변 벽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낙서를 직접 찾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참 묘했다. 2천 년 전 사람들이 사용하던 부엌인데도 낯설기보다는 지금 우리 주변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손을 보면 아직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지만, 그곳에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맞이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음식을 만들고 술을 팔고, 벽에 낙서도 남겼을 사람들. 2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싶었다.
석고 캐스트 앞에서는 발걸음이 느려졌다
폼페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의 석고 캐스트다.
화산재에 묻힌 사람들의 흔적을 바탕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화산재가 남긴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사람들의 형태를 드러낸 사례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쉽게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저 오래된 유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의 모습 앞에서는 한참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폼페이를 걷다 보면 아름다운 집과 모자이크, 정원 같은 것도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석고 캐스트 앞에 서니 이곳이 단순히 오래된 도시의 흔적만 남아 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도 우리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아직도 발굴과 복원 중인 폼페이
돌길을 걷다 보면 복원 작업을 하고 있는 곳도 보였다.
아직 발굴 중인 곳도 있고, 일부는 땅 아래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폼페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금도 이곳에서 발굴하고 복원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보는 유적들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폼페이는 하루 동안 어디까지 봤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폼페이 여행 팁, 편한 신발은 꼭 챙기세요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고 출발했더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유적지 안에서 뭘 먹을 수 있는지 정확히 몰랐던 우리는 폼페이역에서 유적지 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점심을 사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먹을 것을 준비해 간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방문할 때는 유적지 안에 식당이나 카페가 운영하는지 미리 확인해 보고, 물이나 간식도 챙겨 가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신발은 정말 편한 것으로 신어야 한다.
이건 꼭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돌길도 구경거리라서 괜찮았다.
그런데 몇 시간을 계속 걷다 보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ㅎㅎㅎ
특히 남편은 오후 3~4시쯤부터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걸었다.
아직 볼 유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지도를 들고 또 앞장섰다.
"여기 가면 신전 있어."
"조금만 더 가면 돼."
남편은 점점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결국 또 따라 걸었다.
그렇게 폼페이의 돌길을 계속 걷고 또 걸었다.
신전까지는 보고 가자고...

하루 만에 다 보지 못한 폼페이
결국 이날도 폼페이의 모든 곳을 다 보지는 못했다.
특히 아래쪽에 있는 빌라 데이 미스테리(Villa dei Misteri) 쪽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게 지금도 많이 아쉽다.
다음에 다시 폼페이에 간다면 나는 그쪽부터 가보고 싶다.
하지만 이날 우리가 걸었던 길만 해도 충분히 길었다. 오후가 되니 가족 모두의 체력이 바닥나고 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힘들었다는 기억보다, 그날 하루 종일 2천 년 전 도시의 길을 걸었다는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폼페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볼 것도 많았고, 미처 보지 못한 곳도 많았다.
신전과 포룸, 목욕탕, 상점, 주택들까지.
하루 동안 다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폼페이 여행기는 2편으로 이어가야겠다.
사진으로 다시 보는 폼페이
폼페이에서 보고 온 이야기를 하나하나 적으려니 생각보다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사진도 꽤 많이 찍었는데 글에 모두 담지는 못했다. 미처 설명하지 못한 곳들도 사진 속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걷다가 잠시 멈춰 바라봤던 풍경, 오래된 벽과 돌길, 그리고 그날의 폼페이 모습까지.
글로 다 전하지 못한 아쉬움은 사진으로 대신해 본다.
아래 사진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그날의 폼페이를 그대로 담아보려고 한다.
사진 한 장 한 장 천천히 보면서, 그날 우리가 걸었던 폼페이를 함께 감상해 주세요.














나폴리 여행 셋째 날, 폼페이 여행 1편 끝.
다음 편에서는 이날 둘러본 신전과 포룸 등 폼페이의 다른 유적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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