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리 여행기를 마무리하려니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었다.
여행하면서 만났던 풍경과 기억에 남는 순간들, 그리고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워 나폴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남겨본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만난 성
나폴리에서는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걷기도 했다.
항구에서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니 바다 위에 성 하나가 보였다.
카스텔 델로vo)였다어로 ‘달걀 성’이라는 뜻이다



이 성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성 안에 마법의 달걀을 숨겼고,
그 달걀이 깨지지 않는 한 성은 무너지지 않고 나폴리도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해안길을 따라가면 바다를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이어진다.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보였다.
큰 여객선이 드나드는 항구 쪽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바다 가까이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천천히 걸었다.
딸아이가 앞서가다가 괜찮은 풍경을 발견하면 알려주기도 했다.
책이 쌓인 서점 앞에서 들은 하프 연주
포르트알바(Port’Alba)는 오래된 서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다.
비아 포르트알바(Via Port’Alba)를 따라 들어서자 책방들이 이어졌고, 그중 한 서점 앞에는 책이 가게 밖까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런데 서점 앞에서 한 연주가가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다.
책이 쌓인 오래된 책방 앞에서 하프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연주자 옆을 자연스럽게 지나갔지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연주를 들었다.
일부러 찾아간 곳도 아니고 계획에 있던 공연도 아니었다.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었다. 이런 순간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미리 알 수 없는 것 같다.
나폴리 곳곳에 남아 있는 마라도나
나폴리에서는 마라도나의 얼굴도 자주 보였다.
벽화에 그려진 얼굴, 티셔츠와 깃발에 찍힌 얼굴, 가게에 걸린 사진까지. 어느 골목에서는 사진과 꽃,
촛불을 놓아둔 작은 추모 공간이 골목마다 하나씩 보인다.





축구선수 한 명을 이렇게까지 기억한다는 게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다.
마라도나는 1984년 나폴리에 왔고, 1986–87 시즌 나폴리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폴리는 1989–90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거뒀다.
거리에서 자주 보였던 ‘D10S’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등번호 10번과 스페인어로 신을 뜻하는 ‘Dios’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옛 산 파올로 경기장도 그의 이름을 따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바뀌었다.
나는 축구를 열심히 보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골목마다 마라도나의 얼굴이 걸려 있고, 그를 기리는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니 그가 나폴리 사람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인물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유명한 축구선수 한 명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폴리에서 먹었던 것들
나폴리에 왔으니 피자도 꽤 많이 먹었다.
유명하다는 다 미켈레(Da Michele)에도 가봤고, 첫날에는 숙소 앞 작은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 먹었다.




그런데 솔직히 내 입맛에는 첫날 숙소 앞에서 먹었던 나폴리 전통 피자가 더 맛있었다.
유명한 곳이라고 꼭 더 맛있는 건 아닌가 보다. ㅎㅎ
그렇다고 피자만 먹었던 건 아니다.
바다가 가까운 도시답게 해산물 요리도 먹었다.
조개 파스타도 맛봤고, 저녁에는 해산물 요리를 주문하기도 했다. 메뉴판을 보며 그날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음식과 함께 마신 음료도 사진에 남아 있다.
오렌지빛 칵테일을 마시기도 했고, 남편은 페로니(Peroni) 맥주를 즐겨 마셨다.
시원한 맥주 한 병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남편을 보면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ㅎㅎ


커피도 자주 마셨다.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 쉬기도 하고,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마시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폴리에서는 먹는 즐거움도 제법 누렸다.
피자를 원 없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파스타와 해산물도 맛보고 카페에 앉아 쉬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다면 다음 목적지인 아말피에서는 뭘 먹게 될까?
나폴리에서의 4박 5일
나폴리에서 보낸 시간은 4박 5일이었다.
그 시간만으로 나폴리라는 도시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솔직히 많이 놀랐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골목과 거리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오토바이가 많았다.
좁은 골목에서도, 차들이 오가는 도로에서도 오토바이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와, 이게 이탈리아 사람들의 진짜 모습인가?’
처음에는 놀랍고 조금 불편했다.
낭만적인 이탈리아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눈앞의 풍경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달랐다.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기보다는 무질서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니 차츰 익숙해졌다.
오토바이가 골목을 누비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도 더는 낯설지 않았다.
내가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꼈을 뿐, 나폴리 사람들에게는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우리는 여행을 가면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여행지에는 우리가 보러 간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하고 장을 보고,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오가며 자기 삶을 살아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낯선 사람의 눈에는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폴리에서는 그런 일상을 가까이에서 본 기분이 들었다.
4박 5일 동안 그곳 사람들처럼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잠시 그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가 슬쩍 빠져나온 느낌이랄까.
나는 그게 좋았다.
유명한 관광지를 많이 봐서라기보다,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못 가본 곳도 많다.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은 휴관일이라 들어가지 못했고, 산타 마리아 라 노바도 행사 때문에 안을 보지 못했다.
다시 나폴리에 오게 된다면 이번에 놓친 곳들을 찾아가고 싶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짐을 챙겨 나폴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
떠나려니 아쉬웠다.
못 본 곳도 남아 있었고, 다시 걸어보고 싶은 골목도 있었다.
그래도 나폴리에서 보낸 시간은 나름대로 충분히 좋았다.
나폴리에서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아말피로 간다.
나폴리의 골목을 함께 걸으며
그곳의 풍경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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