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에서는 사케가 어떤 술인지, 그리고 준마이슈와 긴조슈, 다이긴조슈처럼 여러 종류의 사케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케를 몇 가지 알아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케는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까?
지금 일본 여행을 가면 사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자카야에 들어가 작은 잔에 한 잔 주문하기도 하고, 회나 구운 생선에 곁들이기도 합니다. 차갑게 마실지, 따뜻하게 데워 마실지도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케가 지금처럼 일상에서 편하게 마시는 술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케의 시작에는 쌀과 농사, 신앙이 함께 있습니다.
⛩️ 처음에는 신에게 바치는 술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쌀로 만든 술을 신에게 바쳤습니다.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술을 올리고, 풍년을 기원했습니다. 마을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도 술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신사에서는 오미키(お神酒)라고 불리는 술을 신에게 바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쌀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습니다.
매일 먹는 음식이었고, 한 해 농사가 얼마나 잘됐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수확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쌀로 술을 빚어 신에게 바쳤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한 해 동안 얻은 수확에 감사하고, 다음 해에도 좋은 농사가 이어지기를 바라며 술을 올렸습니다. 의식이 끝난 뒤에는 사람들이 함께 술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사케는 처음부터 혼자 마시는 술이라기보다, 사람들과 신앙, 공동체가 함께하는 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처음부터 지금 같은 사케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도 지금처럼 맑고 투명한 사케를 마셨을까요?
초기의 쌀술은 지금의 사케와는 모습이 달랐습니다.
지금처럼 맑게 걸러진 술보다는 발효된 쌀 성분이 남아 있어 탁하고 걸쭉한 형태의 술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맑은 사케보다는 막걸리처럼 뿌옇고 진한 술을 떠올리는 편이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사케를 만드는 기술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정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발효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술과 술지게미를 어떻게 분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했습니다.
양조를 반복하면서 경험이 쌓였고, 쌀을 다루는 방법과 발효 기술도 점점 정교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사케 역시 이런 오랜 양조 기술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술입니다.
🏯 사찰도 사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본의 사케 역사를 이야기할 때 사찰을 빼놓기 어렵습니다.
중세 시대의 사찰은 단순히 기도하는 공간만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과 넓은 토지를 가진 큰 공동체였고, 다양한 기술과 지식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술을 빚는 일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사찰에서는 많은 양의 술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양조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발효를 관리하는 방법과 술을 저장하는 기술, 보다 안정적으로 술을 만드는 방법이 축적됐습니다.
오늘날 사케 양조 과정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쌀을 씻고, 불리고, 찌고, 누룩을 만들고, 발효를 관리한 뒤 술을 걸러냅니다.
이런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경험과 기술이 오늘날의 사케 양조로 이어졌습니다.
🍶 그러다 사케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신에게 바치는 특별한 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케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시고,
결혼과 같은 중요한 행사에서 술을 나누고,
새해를 맞이할 때도 함께 한 잔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모이는 자리에도 사케가 함께했습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중요한 순간에 술잔을 나누는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카즈키(盃)입니다.
작은 잔에 술을 따라 서로 주고받는 행위에는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술을 나누며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케는 일본 문화에서 혼자 즐기는 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술이기도 했습니다.
🌾 지역마다 다른 사케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케가 일본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지역마다 술맛에도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용하는 쌀이 달랐고, 물도 달랐습니다.
기후와 양조 환경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습니다.
겨울이 길고 추운 지역에서는 낮은 온도를 이용한 양조가 발달했고, 각 지역의 양조장들은 자신들이 가진 환경에 맞춰 술을 빚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지역의 사케는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고, 어떤 곳은 쌀의 풍미와 감칠맛이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사케를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술 자체뿐 아니라 생산지를 보게 됩니다.
“이 술은 어디에서 만들었지?”
같은 일본의 사케라도 지역에 따라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행지에서 그 지역의 음식과 함께 현지 사케를 마시는 재미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지역의 쌀과 물,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진 양조 방식이 한 병 안에 담겨 있으니까요.
❄️ 사케와 겨울의 관계

예전에는 지금처럼 냉장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술을 빚을 때는 발효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고, 기온이 낮은 겨울이 양조에 유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양조장에서 겨울은 본격적으로 술을 빚는 계절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토지(杜氏)와 양조인들이 술의 상태를 매일 확인했습니다.
발효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지는 않은지.
쌀과 누룩의 상태에는 문제가 없는지.
하나씩 살펴야 했습니다.
사케 양조는 재료를 넣고 기다리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발효 상태에 따라 온도를 조절하고, 술의 변화를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양조장에서 같은 방식으로 술을 만들어도 해마다 맛에 차이가 생길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해의 기온과 습도, 원료의 상태가 모두 같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사케는 일본을 대표하는 술이 되었습니다

신에게 바치던 술이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사찰과 양조장을 거치면서 술을 만드는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지역마다 다른 환경과 양조 방식이 더해지면서 사케는 점점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어떤 쌀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쌀을 얼마나 깎아냈는지에 따라 향과 질감도 달라집니다.
물도 중요하고, 누룩과 효모 역시 사케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런 차이가 모여 오늘날의 다양한 사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준마이슈, 긴조슈, 다이긴조슈 같은 이름도 이런 양조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처음 사케를 접하면 솔직히 어렵습니다.
병에 적힌 한자를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숫자가 적혀 있으면 또 궁금해집니다.
“준마이와 긴조는 뭐가 다르지?”
“다이긴조는 왜 가격이 높은 걸까?”
“병에 적힌 숫자는 무슨 의미일까?”
사케를 마시기 시작하면 이런 궁금증이 하나씩 생깁니다.
하지만 몇 가지만 알아두면 병에 적힌 글자가 조금씩 읽히기 시작합니다.
같은 사케라도 왜 향이 다른지, 왜 어떤 술은 부드럽고 어떤 술은 쌀의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준마이슈와 긴조슈는 무엇이 다른지.
다이긴조는 왜 특별한지.
그리고 사케 병에 적힌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음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알고 나면 사케를 고르는 일이 훨씬 쉬워집니다.
다음에는 사케 병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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