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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여행기를 마무리하려니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었다.

여행하면서 만났던 풍경과 기억에 남는 순간들, 그리고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워 나폴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남겨본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만난 성

나폴리에서는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걷기도 했다.

항구에서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니 바다 위에 성 하나가 보였다. 

카스텔 델로vo)였다어로 ‘달걀 성’이라는 뜻이다

이 성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성 안에 마법의 달걀을 숨겼고, 

그 달걀이 깨지지 않는 한 성은 무너지지 않고 나폴리도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해안길을 따라가면 바다를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이어진다.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보였다. 

 

큰 여객선이 드나드는 항구 쪽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바다 가까이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천천히 걸었다. 

딸아이가 앞서가다가 괜찮은 풍경을 발견하면 알려주기도 했다.

 

책이 쌓인 서점 앞에서 들은 하프 연주

포르트알바(Port’Alba)는 오래된 서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다. 

비아 포르트알바(Via Port’Alba)를 따라 들어서자 책방들이 이어졌고, 그중 한 서점 앞에는 책이 가게 밖까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런데 서점 앞에서 한 연주가가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다.

책이 쌓인 오래된 책방 앞에서 하프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연주자 옆을 자연스럽게 지나갔지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연주를 들었다.

일부러 찾아간 곳도 아니고 계획에 있던 공연도 아니었다.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었다. 이런 순간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미리 알 수 없는 것 같다.

 

나폴리 곳곳에 남아 있는 마라도나

나폴리에서는 마라도나의 얼굴도 자주 보였다.

벽화에 그려진 얼굴, 티셔츠와 깃발에 찍힌 얼굴, 가게에 걸린 사진까지. 어느 골목에서는 사진과 꽃, 

촛불을 놓아둔 작은 추모 공간이 골목마다 하나씩 보인다.

축구선수 한 명을 이렇게까지 기억한다는 게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다.

마라도나는 1984년 나폴리에 왔고, 1986–87 시즌 나폴리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폴리는 1989–90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거뒀다.

 

거리에서 자주 보였던 ‘D10S’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등번호 10번과 스페인어로 신을 뜻하는 ‘Dios’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옛 산 파올로 경기장도 그의 이름을 따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바뀌었다.

 

나는 축구를 열심히 보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골목마다 마라도나의 얼굴이 걸려 있고, 그를 기리는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니 그가 나폴리 사람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인물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유명한 축구선수 한 명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폴리에서 먹었던 것들

나폴리에 왔으니 피자도 꽤 많이 먹었다.

유명하다는 다 미켈레(Da Michele)에도 가봤고, 첫날에는 숙소 앞 작은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 먹었다.

 

그런데 솔직히 내 입맛에는 첫날 숙소 앞에서 먹었던 나폴리 전통 피자가 더 맛있었다. 

유명한 곳이라고 꼭 더 맛있는 건 아닌가 보다. ㅎㅎ

 

그렇다고 피자만 먹었던 건 아니다.

바다가 가까운 도시답게 해산물 요리도 먹었다.

조개 파스타도 맛봤고, 저녁에는 해산물 요리를 주문하기도 했다. 메뉴판을 보며 그날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음식과 함께 마신 음료도 사진에 남아 있다.

오렌지빛 칵테일을 마시기도 했고, 남편은 페로니(Peroni) 맥주를 즐겨 마셨다. 

시원한 맥주 한 병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남편을 보면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ㅎㅎ

커피도 자주 마셨다.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 쉬기도 하고,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마시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폴리에서는 먹는 즐거움도 제법 누렸다. 

피자를 원 없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파스타와 해산물도 맛보고 카페에 앉아 쉬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다면 다음 목적지인 아말피에서는 뭘 먹게 될까?

 

나폴리에서의 4박 5일

나폴리에서 보낸 시간은 4박 5일이었다. 

그 시간만으로 나폴리라는 도시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솔직히 많이 놀랐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골목과 거리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오토바이가 많았다. 

좁은 골목에서도, 차들이 오가는 도로에서도 오토바이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와, 이게 이탈리아 사람들의 진짜 모습인가?’

처음에는 놀랍고 조금 불편했다. 

낭만적인 이탈리아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눈앞의 풍경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달랐다.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기보다는 무질서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니 차츰 익숙해졌다. 

오토바이가 골목을 누비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도 더는 낯설지 않았다. 

내가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꼈을 뿐, 나폴리 사람들에게는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우리는 여행을 가면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여행지에는 우리가 보러 간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하고 장을 보고,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오가며 자기 삶을 살아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낯선 사람의 눈에는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폴리에서는 그런 일상을 가까이에서 본 기분이 들었다. 

4박 5일 동안 그곳 사람들처럼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잠시 그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가 슬쩍 빠져나온 느낌이랄까.

 

나는 그게 좋았다. 

유명한 관광지를 많이 봐서라기보다,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못 가본 곳도 많다.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은 휴관일이라 들어가지 못했고, 산타 마리아 라 노바도 행사 때문에 안을 보지 못했다. 

다시 나폴리에 오게 된다면 이번에 놓친 곳들을 찾아가고 싶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짐을 챙겨 나폴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 

떠나려니 아쉬웠다. 

못 본 곳도 남아 있었고, 다시 걸어보고 싶은 골목도 있었다. 

그래도 나폴리에서 보낸 시간은 나름대로 충분히 좋았다.

나폴리에서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아말피로 간다.

 

 


나폴리의 골목을 함께 걸으며 

그곳의 풍경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제 여행 이야기가 좋으셨다면 공감과 구독으로 함께해 주세요. 

작은 마음 하나가 다음 여행 이야기를 이어가는 큰 힘이 됩니다. 😊

 

여러분이 다녀온 여행지나 궁금한 곳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함께 꿈꿔보면 좋겠습니다.

 

다음 여행 이야기도 편안하게 들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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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1편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아침부터 유적지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어디를 어떻게 볼지 꼼꼼하게 계획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딸아이가 지도와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폼페이 고고학공원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하면서 길을 안내해 주었다.

“엄마, 아빠, 여기부터 가자.”
“이쪽으로 가면 신전이 나와.”

가끔은 유적에 관한 설명도 곁들였다. 우리는 거의 딸아이만 따라다녔다. 이렇게 든든한 가이드가 또 있을까. ㅎㅎㅎ

폼페이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지도 없이 돌아다니다가는 길을 헤매기 십상이고, 보고 싶은 곳을 모두 둘러보려면 하루로도 부족할 것 같았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유적지 지도와 관람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주제별 가이드 투어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를 통째로 잡았으니 가능한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게 결국 오후가 되자 남편을 완전히 방전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ㅎㅎㅎ

폼페이의 중심, 포룸과 신전

 딸아이를 따라 걷다 보니 포룸(Forum)에 도착했다.

포룸은 고대 폼페이의 중심 광장으로, 주변에 주피터 신전과 아폴로 신전, 바실리카를 비롯한 주요 공공건물이 모여 있었다.

지금은 무너진 기둥과 돌바닥,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한때 이곳은 사람들이 모이고 도시의 중요한 일들이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주피터 신전

포룸에서 눈길을 끈 곳 중 하나는 주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이었다.

지금은 기둥과 계단,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지만, 당시 폼페이에서 중요한 종교 공간이었다고 한다. 무너진 돌과 기둥을 보고 있으면 그저 오래된 유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곳에도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고 제사를 지내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돌로 남은 공간 너머로 옛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유적지를 걷는 재미다.

 아폴로 신전

포룸 가까이에는 아폴로 신전(Sanctuary of Apollo)도 있었다.

신전 주변을 둘러보면서 딸아이가 휴대폰으로 공식 자료를 찾아 설명해 주니 그냥 지나칠 때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이날은 따로 가이드북을 펼쳐볼 일이 거의 없었다. 딸아이가 다 해줬으니까. ㅎㅎㅎ

 

포룸 주변에는 신전뿐 아니라 바실리카와 행정 관련 건물 등 도시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현대의 시청이나 법원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도시의 중요한 일들이 이 주변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화산에 묻힌 도시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처음에는 폼페이를 유적지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걸어보니 달랐다. 이곳은 사람들이 살고, 일하고, 장사하고, 종교생활을 하던 도시였다.

그 사실이 유적지를 돌아다닐수록 조금씩 실감났다.

 


 

신전 주변 행정 건물

포룸 주변에는 신전뿐 아니라 바실리카와 시 행정에 관련된 공공건물들도 모여 있었다. 바실리카는 재판이나 상거래 등 공적인 업무가 이루어지던 곳으로, 당시 도시의 중요한 중심 공간 가운데 하나였다. 신전과 공공건물들이 광장 주변에 자리한 모습에서 폼페이의 도시 구조를 살펴볼 수 있었다.


폼페이에도 극장이 있었다

포룸을 지나 이번에는 대극장(Teatro Grande)으로 향했다.

2천 년 전 폼페이에도 극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로웠다.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대극장 옆에는 규모가 작은 소극장(Odeion)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도 공연을 보러 극장에 갔다는 이야기다.

지금처럼 영화관이나 콘서트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는 일하고 먹고 자는 것 말고도 즐길 거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원형경기장에서 경기를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돌로 남은 극장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들의 일상에는 비슷한 부분이 있었던 셈이다.

 


넓은 운동장이었던 대형 팔라에스트라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곳은 대형 팔라에스트라(Large Palaestra)였다.

처음에는 넓은 빈 공간이라 그냥 지나칠 뻔했다. 이곳은 젊은이들이 운동과 신체활동을 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의 체육관이나 운동장과 똑같은 곳은 아니지만, 고대 도시에도 사람들이 몸을 단련하던 공간이 따로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신전과 집만 있는 도시가 아니었다. 공연장도 있고 운동하던 곳도 있고 목욕탕도 있었다.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는 데 필요한 시설이 생각보다 다양했다.

폼페이는 화산재 아래 잠들어 있던 도시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가던 곳이었다.

 

 
 
폼페이에서 만난 오래된 집들

 

폼페이를 돌아다니다 보면 눈길을 끄는 저택들이 여럿 나온다. 그중에서도 파우누스의 집(House of the Faun)과 베티의 집(House of the Vettii)은 꼭 살펴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파우누스의 집, House of the Faun


파우누스의 집은 규모부터 남달랐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넓어 당시 부유한 사람들이 살던 저택이라는 설명이 실감났다. 여러 공간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벽과 바닥을 장식했던 흔적도 남아 있었다.

입구 바닥에는 ‘HAVE’라는 글자가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었다. 라틴어로 환영의 인사를 뜻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안쪽에는 춤추는 파우누스의 청동상이 있었고, 바닥에는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의 전투를 묘사한 대형 모자이크가 있었다. 당시 이 집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장식이었다.

지금은 유적이 되어 있지만, 한때 이곳에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손님을 맞이하며 생활했을 것이다. 집의 규모와 장식을 보고 있으면 당시 이 저택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해진다.

베티의 집, House of the Vettii


베티의 집 역시 유명한 저택이다. 화려한 프레스코화와 정원이 남아 있어 당시 주택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집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2천 년 전이라고 해서 집을 꾸미고 싶은 마음까지 달랐을까?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예쁘게 꾸미고 싶고, 정원도 가꾸고 싶은 마음은 시대가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폼페이의 집들은 단순히 건물의 흔적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취향과 생활 수준까지 짐작하게 해 준다.

 

목욕탕과 고대의 식당

집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곳은 스타비아 목욕탕(Stabian Baths)이었다.

고대 로마 사람들에게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 일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목욕탕은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는 생활공간이기도 했다.

지금의 대중목욕탕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씻는 일과 사교생활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흥미롭다. 


 

 

술과 음식을 팔았던 테프모플리움(Thermopolium)

또 하나 눈길을 끈 곳은 테르모폴리움(Thermopolium)이었다. 간단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던 가게에 가까운 곳이다. 음식을 담아 팔던 시설이 남아 있어 당시 사람들이 밖에서 무엇을 사 먹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곳까지 보고 나니 폼페이라는 도시가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집이 있고, 목욕탕이 있고, 음식을 사 먹는 곳이 있고, 공연을 즐기는 극장도 있었다. 그 안에서 하루를 보내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유적지를 내려다보며 잠시 쉬어 간 시간

 

하루 종일 걷다 보니 우리도 슬슬 지쳤다. 중간에 카페에 들어가 잠시 쉬었다.

아침부터 계속 걸었으니 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ㅎㅎㅎ

 

신전 옆 가림막에서 만난 아이들

신전 쪽을 지나가다가 재미있는 그림 하나를 발견했다.

공사 중인지 한쪽을 가려 놓은 가림막에 아이들이 무언가를 가지고 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이 재미있어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집에 돌아와 사진을 다시 보니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고대 폼페이에서도 호두를 이용한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폼페이 고고학공원의 자료에서도 호두를 이용한 놀이를 소개하고 있었다. 호두를 하나씩 쌓아 올려 탑을 만들고, 무너지지 않게 하는 놀이였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현장에서 본 가림막 그림 자체가 고대 유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림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실제로 당시 사람들에게 호두놀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게 여행의 소소한 재미인 것 같다.

 

현장에서 그냥 지나쳤던 그림 하나가 집에 돌아와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되기도 하니까. 신전이나 포룸처럼 커다란 유적만 보고 돌아왔다면 몰랐을 이야기다.

2천 년 전 아이들도 호두를 가지고 놀았다니. 그 생각을 하니 조금 웃음이 났다.

 

 
 
 
 
 
 

폼페이를 하루 동안 둘러볼 때 알아두면 좋은 것들

직접 하루 종일 걸어 보니 몇 가지는 미리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과 간단한 준비물

더운 날에는 물병을 챙기는 것이 좋다. 유적지를 오래 걸어야 하므로 모자와 선글라스도 유용하다. 햇볕을 피할 곳이 많지 않은 구간에서는 얇은 긴팔 옷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모기 방지제와 모기약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우리 가족은 폼페이에서 모기에 꽤 많이 물렸다.

특히 딸아이의 다리는 여기저기 물린 자국이 생겼고, 나중에는 종아리가 퉁퉁 부어오를 정도였다. 결국 여행 중 약국에 들러 약을 사서 바르기도 했다.

여름에 오래 걸을 예정이라면 모기 방지제를 미리 준비하고, 벌레에 물렸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챙겨 가면 좋겠다. 이 부분은 공식 규정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직접 겪은 경험에서 나온 팁이다.

신발은 편한 것으로

예쁜 신발보다 운동화.

이건 정말 강조하고 싶다. 돌길을 하루 종일 걷다 보면 발이 꽤 아프다. 바닥이 고르지 않은 구간도 있어 편한 신발이 필수다.

남편이 오후 3~4시쯤부터 말이 없어졌던 이유 중 하나도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ㅎㅎㅎ

가방은 작게

폼페이 고고학공원의 공식 규정에 따르면 30×30×15cm를 초과하는 가방이나 배낭, 여행용 가방은 유적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큰 짐은 입구의 유료 보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짐을 들고 방문할 계획이라면 출발 전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신 규정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보고 싶은 곳을 미리 골라 두기

폼페이는 넓고, 모든 건물이 늘 개방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관람 가능한 건물과 운영 시간이 안내되어 있으며, 임시 휴관이나 동선 변경이 있을 수 있다.

하루 동안 모든 곳을 보겠다고 욕심내기보다는 꼭 보고 싶은 곳을 먼저 정해 두는 편이 좋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지도를 확인하고 관심 있는 유적의 위치를 살펴보면 동선을 짜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딸아이가 현장에서 지도를 확인해 가며 안내해 준 덕분에 꽤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도 결국 못 보고 온 곳이 남았다.

그렇게 오래 걸었는데도 못 보고 온 곳

우리는 아침부터 꽤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나와 딸아이는 아직 볼 것이 더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오후가 되면서 완전히 방전됐다.

그래도 신전까지는 보고 가자고 했다. 결국 그곳까지 둘러본 뒤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못 보고 온 곳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바로 빌라 데이 미스테리(Villa dei Misteri), 미스테리의 별장이었다.

우리는 그쪽까지 내려가지 못했다. 그날은 정말 너무 지쳤다.

“다음에 보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조금 아쉽다. 미스테리의 별장에는 유명한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폼페이 고고학공원의 공식 안내에도 관람 장소로 소개되어 있지만, 실제 개방 여부와 관람 시간은 방문 시점에 확인해야 한다.

그때 조금만 더 힘을 냈더라면 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날 남편의 표정을 생각하면 더 걷자고 하기도 어려웠다. ㅎㅎㅎ

여행에서는 욕심을 부린다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보고, 남은 곳은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도 어쩌면 필요한 일이다.

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아직 남아 있던 폼페이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중간에 기차도 갈아타고,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먹은 뒤 폼페이에 들어와서는 하루 종일 걸었다. 남편은 완전히 방전됐고 나와 딸아이도 다리가 아팠다. 그래도 나는 폼페이가 참 좋았다. 신전도 좋았고 극장도 인상적이었지만, 내가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은 그 안에 남아 있던 생활의 흔적들이다. 사람들이 살던 집, 음식을 팔던 곳, 목욕을 하던 곳, 공연을 보던 극장, 운동을 하던 공간. 그리고 신전 옆 가림막에 그려져 있던 아이들.

 

집에 돌아와 그 그림을 다시 보다가 호두놀이 이야기를 알게 된 것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는 하루 동안 꽤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도를 다시 펼쳐 보니 못 가본 곳이 더 많았다.

 

특히 미스테리의 별장.

사진을 정리할 때마다 가끔 생각한다.

‘그쪽까지 가볼 걸.’

다음에 폼페이에 다시 가게 된다면 나는 아마 그곳부터 찾아갈 것 같다.

이번에는 남편의 체력도 조금 더 고려해서 말이다. ㅎㅎㅎ


📌 폼페이 하루 여행, 기억해 둘 만한 장소

  • 포룸과 신전 — 고대 폼페이의 중심이었던 광장과 주피터 신전, 아폴로 신전, 바실리카 등
  • 대극장·소극장 — 당시 사람들이 공연을 즐기던 공간
  • 대형 팔라에스트라 — 운동과 신체활동이 이루어지던 넓은 장소
  • 파우누스의 집 — 규모와 모자이크 장식으로 유명한 저택
  • 베티의 집 — 프레스코화와 정원으로 유명한 주택
  • 스타비아 목욕탕 — 고대 폼페이의 목욕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
  • 테르모폴리움 — 당시 사람들이 음식을 사 먹던 가게
  • 미스테리의 별장 — 유명한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는 곳. 이번 여행에서 보지 못해 가장 아쉬웠던 장소

📌 폼페이 방문 전 공식 정보 확인하기

폼페이는 유적지 규모가 크고, 건물별 개방 여부와 운영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신 관람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 공식 홈페이지: https://pompeiisites.org/en/

  - 지도 및 관람 안내: https://pompeiisites.org/en/visiting-info/map-and-guide-to-the-excavations/

  - 운영 시간 및 입장권: https://pompeiisites.org/en/visiting-info/timetables-and-tickets/ 

  - 관람 가능한 건물과 운영 시간: https://pompeiisites.org/en/houses/ 

 

 하루 동안 모든 곳을 둘러보기는 쉽지 않은 곳인 만큼, 꼭 보고 싶은 유적을 먼저 정하고 체력에 맞춰. 동선을 짜면 훨씬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다 보지 못한 도시.

그래서인지 폼페이는 돌아온 뒤에도 자꾸 생각난다. 그날의 피곤함은 조금씩 잊히지만, 오래된 집과 골목, 그리고 미처 가보지 못한 장소들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이번에는 꼭 미스테리의 별장까지 걸어가 보고 싶다.

 
 
폼페이의 중심, 포룸과 신전

딸아이를 따라 걷다 보니 포룸(Forum)에 도착했다.

포룸은 고대 폼페이의 중심 광장으로, 주변에 주피터 신전과 아폴로 신전, 바실리카를 비롯한 주요 공공건물이 모여 있었다.

지금은 무너진 기둥과 돌바닥,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한때 이곳은 사람들이 모이고 도시의 중요한 일들이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주피터 신전

포룸에서 눈길을 끈 곳 중 하나는 주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이었다.

지금은 기둥과 계단,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지만, 당시 폼페이에서 중요한 종교 공간이었다고 한다. 무너진 돌과 기둥을 보고 있으면 그저 오래된 유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곳에도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고 제사를 지내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돌로 남은 공간 너머로 옛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유적지를 걷는 재미다.

아폴로 신전

포룸 가까이에는 아폴로 신전(Sanctuary of Apollo)도 있었다.

신전 주변을 둘러보면서 딸아이가 휴대폰으로 공식 자료를 찾아 설명해 주니 그냥 지나칠 때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이날은 따로 가이드북을 펼쳐볼 일이 거의 없었다. 딸아이가 다 해줬으니까. ㅎㅎㅎ

포룸 주변에는 신전뿐 아니라 바실리카와 행정 관련 건물 등 도시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현대의 시청이나 법원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도시의 중요한 일들이 이 주변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화산에 묻힌 도시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처음에는 폼페이를 유적지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걸어보니 달랐다. 이곳은 사람들이 살고, 일하고, 장사하고, 종교생활을 하던 도시였다.

그 사실이 유적지를 돌아다닐수록 조금씩 실감났다.

폼페이에서 만난 오래된 집들

폼페이를 돌아다니다 보면 눈길을 끄는 저택들이 여럿 나온다. 그중에서도 파우누스의 집(House of the Faun)과 베티의 집(House of the Vettii)은 꼭 살펴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파우누스의 집, House of the Faun

파우누스의 집은 규모부터 남달랐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넓어 당시 부유한 사람들이 살던 저택이라는 설명이 실감났다. 여러 공간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벽과 바닥을 장식했던 흔적도 남아 있었다.

입구 바닥에는 ‘HAVE’라는 글자가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었다. 라틴어로 환영의 인사를 뜻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안쪽에는 춤추는 파우누스의 청동상이 있었고, 바닥에는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의 전투를 묘사한 대형 모자이크가 있었다. 당시 이 집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장식이었다.

지금은 유적이 되어 있지만, 한때 이곳에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손님을 맞이하며 생활했을 것이다. 집의 규모와 장식을 보고 있으면 당시 이 저택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해진다.

베티의 집, House of the Vettii

베티의 집 역시 유명한 저택이다. 화려한 프레스코화와 정원이 남아 있어 당시 주택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집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2천 년 전이라고 해서 집을 꾸미고 싶은 마음까지 달랐을까?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예쁘게 꾸미고 싶고, 정원도 가꾸고 싶은 마음은 시대가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폼페이의 집들은 단순히 건물의 흔적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취향과 생활 수준까지 짐작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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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남겨 주시는 따뜻한 흔적 하나하나가 다음 여행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된답니다.

앞으로도 여행길에서 만난 소소한 풍경과 이야기들을 정답게 나눌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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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해리 왕자 부부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코츠월드에서 지내는 이들 부부를 두고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실을 떠나면 좀 조용히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닌 모양이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관심이 따라다니니, 유명인으로 산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라고 별다를 것도 없다.

 

동양인이라고는 우리 부부밖에 없는 영국 시골에 살고 있지만, 이곳이라고 늘 평화롭고 한가로운 것만은 아니다.

주차 문제로 신경이 쓰일 때도 있고, 이웃집 강아지가 밤새 짖어대면 슬슬 참을성이 바닥나기도 한다.

 

산책길에는 강아지 똥을 치우지 않고 가는 사람도 있다. 뒤따라오던 사람이 치우라고 한마디 하면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

 

그러면 뒤에서 한바탕 잔소리가 이어지기도 한다.

 

참, 별일이 다 있다. ㅎㅎㅎ

 

어딜 가나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편한 게 먼저인 사람도 있고, 작은 일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영국 시골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 점잖고 고상하기만 한 건 아니다. 살아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그러니 해리 부부라고 무슨 별세계에서 살겠나.

 

그저 우리처럼 이웃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거겠지. 다만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면 동네 이야기로 끝날 일이, 그들에게는 온 세상에 알려지는 뉴스가 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살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속을 끓이다 보면 결국 나만 피곤하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이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사는 거다.

 

좋은 이웃을 만나면 고마운 일이고, 가끔 얄미운 이웃을 만나면 또 그런 날도 있는 거고. 매번 마음에 담아두고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그리 길지도 않으니까.

 

오늘도 어디선가는 누군가 주차 문제로 투덜대고, 건너 집 할아버지는 강아지 똥을 치우라고 한마디 하고 있겠지.

그래도 아침은 오고, 새들은 지저귀고, 동네 사람들은 또 각자 할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좋은 사람도 있고, 얄미운 사람도 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는 세상.

 

참 별별 사람들이 섞여 산다.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ㅎㅎㅎ


오늘도 제 소소한 영국 시골살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공감과 댓글로 살짝 인사 남겨주세요.

이웃님들은 주변 사람들 때문에 속상했던 적 없으신가요? 여러분의 이야기도 언제나 반갑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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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여행 셋째 날

이날은 아침부터 조금 서둘렀다. 폼페이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폼페이는 하루에 다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뿐이었다.

B&B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면 늦을 것 같아 아예 아침도 건너뛰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조금 꼬였다.

폼페이 가는 길, 기차를 잘못 끊었다

딸아이가 기차편을 알아보고 집 근처 역에서 표를 샀는데, 중간에 내려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어디에서 갈아탔는지는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중간 역에서 내려 다음 기차를 기다리게 됐다.

마침 역 근처에 작은 카페가 있어서 들어갔다. 아침도 먹지 않고 나온 터라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빵도 하나씩 먹었다.

그런데 그 빵이 꽤 맛있었다.

크루아상처럼 생겼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여행 중에 먹은 음식은 이상하게 이런 사소한 것들도 기억에 남는다. 유명한 맛집에서 먹은 음식보다 우연히 들른 곳에서 먹은 빵이 더 오래 기억날 때도 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다시 기차를 기다렸다.

나중에 딸아이가 기차편을 다시 확인하더니 하는 말.

"이거 그냥 한 번에 가는 기차도 있네?"

ㅎㅎㅎ

그래도 덕분에 예상하지 않았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우리 여행의 한 장면이었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던 나폴리 근교 풍경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해안선을 따라 집들이 이어지고, 작은 마을과 항구처럼 보이는 풍경들이 하나씩 지나갔다. 나폴리 시내를 벗어나니 주변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폼페이에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창밖 풍경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폼페이에 도착했다.

 

 

 

지금의 폼페이를 지나 2천 년 전 도시로

 

폼페이 현대 시가지 풍경
폼페이 유적지 입구
 
 

폼페이역에서 내려 유적지 쪽으로 걸어갔다.

유적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는 폼페이시가 이어졌다.

주택도 보이고 식당과 상점도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도시의 모습이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약 2천 년 전의 도시가 남아 있다니.

그렇게 현재의 폼페이를 지나 유적지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또 한 번 놀랐다.

'이게 정말 2천 년 전 도시라고?'

눈앞에 펼쳐진 돌길과 건물의 흔적이 생각보다 너무 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원형 경기장

 

원형 경기장 입구

 

원형 경기장 내부

2000천년 전에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산의 분화로 화산재와 화산 쇄설물에 묻힌 도시다.

그 덕분에 당시의 집과 도로, 상점,공공건물 등 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

오기 전에는 그저 화산에 묻힌 오래된 도시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사람들이 살던 집도 있고, 상점도 있고, 목욕탕과 음식점도 있었다.

사람들이 먹고살고 장사를 하고 길을 오가던 곳이었다.

2천 년 전에도 이곳에는 평범한 일상이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폼페이의 길

 
폼페이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도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길이었다.

돌을 깔아 만든 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길 가장자리에는 보행 공간도 있었다.

돌길 곳곳에서는 물이 빠져나가도록 만든 배수시설도 볼 수 있었다.

걸으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이게 정말 2천 년 전이라고?'

물론 지금의 도로처럼 반듯하고 편한 길은 아니었다. 돌길이라 발바닥에도 꽤 부담이 갔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이 길을 실제로 걸어 다녔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폼페이 전체 면적은 약 66헥타르라고 한다. 평수로 바꾸면 거의 20만 평에 가까운 규모다.

직접 걸어보니 왜 하루 만에 다 보기 어렵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딸아이는 지도를 들고 앞에서 계속 우리를 이끌었다.

"여기 먼저 가자."

"엄마, 이쪽이야."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아가는 딸아이 덕분에 우리는 뒤에서 따라다니며 구경만 하면 됐다.

이번 여행에서 딸아이가 거의 우리 전담 가이드였다.

생각해 보면 참 편한 여행이었다. 

 

원형경기장을 나오며 바라본 베수비오산

처음에는 입구 왼쪽에 있는 전시 공간을 둘러보다가 원형경기장 쪽으로 갔다.

원형경기장은 폼페이의 동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직접 가보니 규모도 꽤 컸다.

그곳에서 유적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뒤쪽으로 시선이 갔다.

베수비오산이 보였다.

마침 산 정상에 구름이 걸려 있었다.

구름이 산머리에 걸린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폼페이에 와서 직접 그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느낌이 조금 달랐다.

저 산의 분화 때문에 바로 이곳에 있던 도시가 묻힌 거니까.

사진을 찍고 한참 산을 바라봤다.

평소에 다른 곳에서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인데, 이곳에서는 자꾸 눈길이 갔다.

저 산 때문에 이 도시의 시간이 멈췄구나.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조금 전까지 그냥 오래된 돌길로만 보이던 것들도 다르게 보였다.

이 길을 사람들이 걸었고, 이 집에서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저곳에서는 물건을 사고팔았겠지.

그렇게 생활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 도시를 떠나거나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사람들이 살던 길을 걷고 있었다.

.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더 놀라웠다

폼페이의 주거공간, 저택, 일반주택 등...

폼페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집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집 안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고, 벽에는 아직 색이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도 보였다.

바닥에 타일 모자이크가 깔려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이런 화려한 장식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했던 모습이었다.

물을 사용하고 저장하던 시설도 있고, 배수시설과 화장실도 있었다.

주방처럼 보이는 공간도 남아 있었다.

2천 년 전이라고 하면 왠지 불편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막상 눈앞에서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꽤 달랐다.

물을 사용하고, 음식을 만들고, 집을 꾸미며 살아가던 모습이 지금의 생활과 아주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2천 년 전에도 낙서를 했다고?

 

딸아이의 뒤를 따라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마침 미국인 관광객들이 모여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원래 해설을 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사람들이 길을 막고 있는 덕분에 우리도 함께 설명을 듣게 됐다. ㅎㅎㅎ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곳은 당시 술과 음식을 팔던 곳이었다.

벽에는 낙서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름을 적어놓은 것도 있고, 사랑에 관한 글이나 농담, 욕설처럼 지금 사람들이 남기는 낙서와 비슷한 내용도 있단다.

주변 벽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낙서를 직접 찾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참 묘했다. 2천 년 전 사람들이 사용하던 부엌인데도 낯설기보다는 지금 우리 주변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손을 보면 아직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지만, 그곳에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맞이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음식을 만들고 술을 팔고, 벽에 낙서도 남겼을 사람들. 2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싶었다.


석고 캐스트 앞에서는 발걸음이 느려졌다

폼페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의 석고 캐스트다.

 

화산재에 묻힌 사람들의 흔적을 바탕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화산재가 남긴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사람들의 형태를 드러낸 사례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쉽게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저 오래된 유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의 모습 앞에서는 한참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폼페이를 걷다 보면 아름다운 집과 모자이크, 정원 같은 것도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석고 캐스트 앞에 서니 이곳이 단순히 오래된 도시의 흔적만 남아 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도 우리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아직도 발굴과 복원 중인 폼페이

돌길을 걷다 보면 복원 작업을 하고 있는 곳도 보였다.

아직 발굴 중인 곳도 있고, 일부는 땅 아래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폼페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금도 이곳에서 발굴하고 복원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보는 유적들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폼페이는 하루 동안 어디까지 봤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폼페이 여행 팁, 편한 신발은 꼭 챙기세요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고 출발했더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유적지 안에서 뭘 먹을 수 있는지 정확히 몰랐던 우리는 폼페이역에서 유적지 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점심을 사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먹을 것을 준비해 간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방문할 때는 유적지 안에 식당이나 카페가 운영하는지 미리 확인해 보고, 물이나 간식도 챙겨 가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신발은 정말 편한 것으로 신어야 한다.

 

이건 꼭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돌길도 구경거리라서 괜찮았다.

그런데 몇 시간을 계속 걷다 보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ㅎㅎㅎ

특히 남편은 오후 3~4시쯤부터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걸었다.

아직 볼 유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지도를 들고 또 앞장섰다.

"여기 가면 신전 있어."

"조금만 더 가면 돼."

남편은 점점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결국 또 따라 걸었다.

그렇게 폼페이의 돌길을 계속 걷고 또 걸었다.

신전까지는 보고 가자고...

 

하루 만에 다 보지 못한 폼페이

결국 이날도 폼페이의 모든 곳을 다 보지는 못했다.

특히 아래쪽에 있는 빌라 데이 미스테리(Villa dei Misteri) 쪽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게 지금도 많이 아쉽다.

다음에 다시 폼페이에 간다면 나는 그쪽부터 가보고 싶다.

하지만 이날 우리가 걸었던 길만 해도 충분히 길었다. 오후가 되니 가족 모두의 체력이 바닥나고 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힘들었다는 기억보다, 그날 하루 종일 2천 년 전 도시의 길을 걸었다는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폼페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볼 것도 많았고, 미처 보지 못한 곳도 많았다.

신전과 포룸, 목욕탕, 상점, 주택들까지.

하루 동안 다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폼페이 여행기는 2편으로 이어가야겠다.


사진으로 다시 보는 폼페이

폼페이에서 보고 온 이야기를 하나하나 적으려니 생각보다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사진도 꽤 많이 찍었는데 글에 모두 담지는 못했다. 미처 설명하지 못한 곳들도 사진 속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걷다가 잠시 멈춰 바라봤던 풍경, 오래된 벽과 돌길, 그리고 그날의 폼페이 모습까지.

글로 다 전하지 못한 아쉬움은 사진으로 대신해 본다.

아래 사진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그날의 폼페이를 그대로 담아보려고 한다.

사진 한 장 한 장 천천히 보면서, 그날 우리가 걸었던 폼페이를 함께 감상해 주세요.

 

 

=
 

 

 
 

 

 
 
 
 
 

나폴리 여행 셋째 날, 폼페이 여행 1편 끝.

다음 편에서는 이날 둘러본 신전과 포룸 등 폼페이의 다른 유적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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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왔습니다.”

이 말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차분해집니다.

경주는 참 이상한 도시입니다.

어디를 걸어도 그저 오래된 도시를 걷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길 하나를 돌아서면 고분이 나타나고,
조금 더 걸으면 오래된 한옥이 보입니다.

담장 너머에는
몇백 년 전 이곳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흔적이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찾아온 곳은 경주의 교동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날 술은
화려하게 이름을 알린 술이라기보다,

한 집안에서 오랜 세월 정성껏 빚어온 술,
교동법주(校洞法酒)입니다.


교동에는 오래된 집이 있습니다

교동 골목에 들어서면 낮은 담장과 한옥들이 이어집니다.

그 가운데에는 경주 최부자 집으로 알려진 오래된 고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택 앞에 서 있으면 괜히 발걸음도 느려집니다.

요즘은 집도, 음식도, 술도 빠르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소비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조금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합니다.

술 한 병을 빚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그 술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교동법주는 그 느린 시간 속에서 이어져 온 술입니다.

경주 교동법주는 경주 최씨 가문에서 대대로 빚어온 가양주로,1986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찹쌀과 누룩, 그리고 백 일

사진출처 : 국가유산청

교동법주는 토종 찹쌀을 주원료로 빚는 전통 곡주입니다.

그런데 이 술의 맛을 만드는 데에는 재료만큼이나 술을 빚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먼저 찹쌀죽에 누룩을 섞어 밑술을 만듭니다.

그리고 여기에 찹쌀로 지은 고두밥과 누룩, 물 등을 더해 다시 발효시키고 숙성시킵니다.

이렇게 발효와 숙성을 거쳐 맑은 술이 완성되기까지 약 100일이 걸립니다. 

술은 재촉한다고 빨리 익는 것이 아니니까요.

사람은 할 일을 다하고 나머지는 술에게 맡겨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옛사람들은 기다리는 일에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도 기다리고, 장을 담글 때도 기다리고, 술을 빚을 때도 기다렸으니까요.

화려하지 않아서 오래 남는 술

 

 

교동법주는 맑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곡주 특유의 향과 단맛, 그리고 은은한 신맛을 지닌 술로 소개됩니다.
알코올 도수는 대체로 16~18도입니다. 

첫 모금에

“와!”

하고 놀라게 하기보다는, 한 모금 마신 뒤 잠시 잔을 내려놓고

“참 곱다.”

하고 말하게 되는 술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시간이 지나면 문득 생각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지요.

처음부터 목소리가 크고 존재감이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없이 곁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문득 떠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에게 교동법주는 조금 그런 술입니다.


술에도 집안의 시간이 담깁니다

교동법주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오래된 술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술은 경주 최씨 가문에서 가양주로 이어져 왔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최국선은 조선 숙종 때 사옹원 참봉을 지냈고,낙향한 뒤 집안에 술 빚는 법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 뒤 술은 집안의 제사와 손님맞이 등에 쓰이며 며느리들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전해졌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서 술을 빚는다는 것은 단순히 제조법 하나를 물려주는 일과는 다를 겁니다.

 

어떤 쌀을 고르는지, 밥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누룩은 어떻게 다루는지. 그리고 술이 익어가는 동안 언제 손을 대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 그런 것들은 책에 모두 적어놓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손끝의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양주에는 레시피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사람의 손과 함께 전해지는 술.

그것이 가양주가 가진 매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법주’라는 이름

그런데 이름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법주(法酒)일까요?

 

이 이름에는 여러 가지 설명이 전해집니다.

 

일정한 순서와 방법에 따라 빚는 술이라는 설명도 있고, 궁중에서 익힌 술 빚는 법을 가지고 내려와 집안에서 이어왔기 때문에 법주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국가유산 자료에서는 ‘법주’라는 이름의 어원을 하나로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름의 유래를 굳이 하나로 정해 말하기보다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름 그대로 ‘교동법주’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술 이름 하나에도 오래된 이야기가 남아 있는 셈입니다.


경주에서는 술도 풍경이 됩니다

교동법주를 생각하며 경주의 골목을 다시 걸어봅니다.

오래된 돌담. 한옥의 처마. 마당에 내려앉은 햇살. 그리고 고택 너머로 보이는 천년의 풍경.

이곳에서 교동법주 한 잔을 마신다면 술맛도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술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술이 태어난 동네까지 함께 마시는 기분.

우리가 술을 따라 여행하는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술 한 잔에 집 한 채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안동에서 소주를 만나고, 한산에서 소곡주를 만나고,전주에서 이강주를 만났습니다.

 

제주에서는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만났고,문배주와 낙안 사삼주,당진의 면천두견주까지 찾아갔습니다.

 

술의 이름도,태어난 곳도 모두 달랐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자신이 태어난 곳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교동법주도 그렇습니다.

 

이 술을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전통주 한 잔을 마시는 일이 아닐 겁니다.

 

경주의 오래된 집과한 가문의 전통,그리고 그 술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잠시 들여다보는 일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오래된 술이란 오래된 레시피가 아니라 오래 지켜온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여행에서는 또 어떤 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다음 잔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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