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떠났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화려한 대도시를 떠올린다.
하지만 툴루즈에서의 둘째 날은 조금 달랐다.

유명한 관광지를 체크하듯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천천히 걷다가 마음이 멈추는 곳에서 쉬어가는 하루였다.

 

남프랑스에서 맞이한 둘째 날 아침.

전날 늦은 밤까지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피곤했지만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에 눈이 먼저 떠졌다.

출근 준비를 마친 딸아이는 바쁘게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엄마, 아빠. 프랑스는 바게트예요. 꼭 먹어봐야 해요."

웃으며 문을 나선 딸아이.

식탁 위에는 아침 일찍 동네 빵집에서 사다 놓은 기다란 바게트빵과 갓 내린 커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바게트를 조심스럽게 뜯어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남편과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겉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바삭했고 속은 생각보다 훨씬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우리가 평소 먹던 바게트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솔직히 바게트는 그냥 딱딱한 빵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만난 바게트는 하나의 음식이었다.

더 신기했던 건 골목 안 작은 가게들에서도 직접 바게트를 구워낸다는 사실이었다.

간판도 크지 않은 조그마한 가게 앞에서도 아침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완전히 바게트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걷다가 입이 심심해지면 작은 가게에 들어가 바게트 하나를 사 들고 길을 걸으며 조금씩 뜯어 먹었다.

이상하게 프랑스에서는 어디에서 사 먹어도 맛있었다.
유명한 빵집이 아니라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작은 구멍가게에서도 말이다.

 

그 후 알게 됐다. 프랑스 바게트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갓 구운 따뜻한 바게트를 손으로 조금씩 뜯어가며 천천히 걷는 것.
이상하게도 그 빵은 목적지보다 걷는 시간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었다.

 

골목 끝을 돌아 나오자 눈앞에 Place du Capitole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광장을 둘러싼 장밋빛 건물들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은은한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광장 안은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이미 활기가 가득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약속 장소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카페 테라스에 앉아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다른 하루가 같은 공간 안에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광장 한쪽에 잠시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유명한 장소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한참을 머물다 다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툴루즈는 참 이상한 도시였다.

굳이 관광지를 찾아가지 않아도 걷다 보면 어느새 중요한 장소 앞에 도착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성 세르냉 대성당이었다.

 

 

 

 

멀리서도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높은 종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의 활기와는 전혀 다른 고요함이 느껴졌다.

오래된 돌기둥 사이로 스테인드글라스 빛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관광객들조차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도 괜히 조용히 걸었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여행 정보 | 성 세르냉 대성당

  • 입장료 : 무료
  • 운영시간 : 보통 08:30~18:00
  • 추천 관람 시간 : 30~40분
  • 여행 팁 : 오전 시간에 가면 훨씬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미사 시간에는 일부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성당을 나와 다시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 아침을 먹었는데도 또 입이 심심해졌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또 먹을까?"

결국 또 작은 빵집 앞에서 멈춰 섰다.

 

갓 구운 바게트 하나를 손에 들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이제는 관광보다 바게트를 먹기 위해 걷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Couvent des Jacobins(자코뱅 수도원(자코뱅 수도원 성당)) 앞에 도착했다.

 

 

밖에서 봤을 때는 생각보다 소박해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높은 천장 아래로 독특하게 뻗은 기둥들이 마치 나무 가지처럼 퍼져 있었다.

고요한 공간 위로 시간이 천천히 내려앉아 있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여행 정보 | 자코뱅 수도원 (Couvent des Jacobins)

  • 교회 내부 : 무료
  • 수도원/회랑 관람 : 약 €5~6
  • 운영시간 : 화~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가능)
  • 추천 관람 시간 : 40~60분
  • 여행 팁 : 내부의 독특한 야자수 모양 기둥은 꼭 천장을 올려다보며 감상해 보자.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다리가 조금 무거워졌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Garonne River 쪽으로 향했다.

 

 

강가에는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루를 펼쳐놓고 있었다.

좁은 강둑에 길게 누워 책을 읽는 여인도 있었고, 신발을 벗어둔 채 강물만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친구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햇빛 속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누구 하나 바쁘게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도 그들 틈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바게트 한 조각을 천천히 뜯어 먹으며 강바람을 맞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그 강가는 조용히 알려주는 것 같았다.

파리처럼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도시.

유명한 곳을 다 보지 못해도 아쉽지 않은 도시.

툴루즈는 그런 곳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래 잊고 지냈던 둘만의 시간을 다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원래는 1편 다음으로 남프랑스 소도시 이야기를 전하려 했지만, 조금 순서를 바꿔 먼저 툴루즈에서의 시간을

      이어가려 합니다. 이후 여행 이야기는 우리가 실제 걸었던 여정의 순서대로 천천히 들려드릴게요.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공감과 댓글 부탁드립니다 .


https://kjhee01.tistory.com/76

 

[남프랑스 여행기] 1. 장밋빛 도시 툴루즈, 딸의 집을 찾아가는 설레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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