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파리'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발디뎌본 뻔한 대도시의 풍경은 이번 여정에서 과감히 건너뛰기로 했다.

우리 부부의 발길이 닿은 곳은 이름마저 조금은 낯선 남프랑스의 숨은 보석, 툴루즈(Toulouse)다.

사랑하는 딸아이가 이곳으로 잠시 파견 근무를 가게 되면서 우리 부부에게도 마법 같은 남프랑스 소도시 여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La Ville Rose, 장밋빛 도시를 마주하다

세계적인 우주항공 도시라는 거창한 수식어보다 내 마음을 먼저 사로잡은 건 툴루즈의 별명이었다. ‘La Ville Rose(장밋빛 도시)’. 진흙을 구워 만든 이 지역 특유의 붉은 벽돌 건물들이 햇살을 받을 때마다 도시 전체가 은은한 장밋빛으로 물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공항에 내려 마주한 툴루즈의 첫인상은 대도시의 세련됨과 남프랑스 특유의 다정한 여유로움이 묘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툴루즈 골목길에서 펼쳐진, 구글 지도와의 사투

낯선 언어와 낯선 공기 속, 손에 쥔 것은 딸아이가 보내준 주소 하나가 전부였다.

불어라고는 "봉주르"밖에 모르는 우리 부부에게 프랑스 남부의 이정표들은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믿을 것이라곤 오직 화면 속 파란 점이 깜빡이는 '구글 지도'와 우리 부부의 동물적인 '여행의 감'뿐이었다.

남편과 함께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돌바닥을 덜컹덜컹 울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길이 맞는지 틀린 지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서툰 발걸음을 옮겼다.

간혹 마주치는 표지판 하나를 보는 것도 조심스러웠지만, 딸의 보금자리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긴장감은 이내 몽글몽글한 설렘으로 바뀌었다. 미로 같은 붉은 골목을 헤매다 마침내 도달한 익숙한 숫자의 문 앞.

구글 지도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안내를 종료하는 순간, 참았던 숨이 탁 놓였다. 벨을 누르는 손 끝이 살짝 떨렸다. 문이 열리고 환하게 웃는 딸아이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휴, 드디어 찾았다!" 하는 기쁨과 함께 긴 비행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남프랑스 첫날 밤, 붉은 벽돌 아파트 아래의 환상적인 미식

딸아이의 보금자리는 툴루즈 중심가에 위치한, 회사에서 마련해 준 고풍스럽고 오래된 아파트였다.

세월의 흔적이 멋스럽게 묻어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짐을 풀고 나니,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딸아이가 베시시 웃으며 우리를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이끌었다.

건물 아래, 장밋빛 골목길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1층 상점들 사이에 툴루즈에서 아주 유명한 로컬 오리고기 식당이 있어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는 것이다. 타지에서 기특하게 적응해 부모를 대접하는 딸의 예쁜 마음씨에 먹기 전부터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가벼운 옷을 갈아입고 다시 골목으로 내려갔다.

 

 

툴루즈가 속한 남프랑스 오시타니(Occitanie)지방은 본래 오리고기 요리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날 우리가 맛본 요리는 프랑스 전통 오리 다리 요리인 '콩피 드 카나르(Confit de Canard)'였다.

오리 기름에 오랫동안 조려내어 부드러움의 극치를 자랑하는 남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울 푸드다.

여기에 화덕의 마법이 더해지니 참나무 향이 은은하게 배어들면서 겉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육즙으로 가득 찼다. 그 환상적인 맛에 남편과 나는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진한 포도 향을 품은 툴루즈의 로컬 레드 와인 한 잔을 곁들이니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며, 왜 이곳이 미식의 천국인지 온몸으로 실감 나게 했다. 이국적이면서도 완벽한 마리아주(음식과 와인의 조화)를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제대로 차려진 프랑스 요리와 환상적인 로컬 와인, 그리고 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끝없는 이야기들. 밀린 안부와 행복한 웃음소리로 식탁이 가득 채워졌다. 우리가 정말 프랑스에 와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사랑하는 딸과 함께 마주 앉아 있다는 기쁨이 온몸으로 실감 나는 최고의 밤이었다.


자유로움이 넘실대던 툴루즈의 밤거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딸아이의 안내를 받으며 툴루즈의 밤거리로 나섰다.

은은한 조명이 붉은 벽돌 건물을 비추는 밤의 툴루즈는 낮보다 훨씬 낭만적이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가론(Garonne) 강가와 캡피톨 광장(Place du Capitole)에는 밤늦은 시간임에도 활기가 넘쳤다. 바닥에 자유롭게 주저앉아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노천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웅성거리는 불어 소리, 그리고 밤바람을 타고 흐르는 자유로운 공기.

 

파리처럼 쫓기듯 명소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좋은 곳.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자유'라는 단어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서정적인 밤이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특별한 남프랑스 추억은 장밋빛 도시의 밤하늘 아래서 따뜻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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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인 툴루즈 주변 소도시 여행기가 이어집니다!

* 영국 휴식같은 시골여행 브런치북 속에 프랑스 시골 마을 이야기도 들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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