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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연을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치핑 캠든의 하이 스트리트를 천천히 걸어 마을 끝에 다다랐다.

꿀빛 석회암 건물들이 하나둘 멀어지고, 좁은 골목은 숲길로 이어졌다.

완만한 언덕을 따라 올라가자 커다란 나무 사이로 정원의 입구가 보였다.

Hidcote Manor Garden.

입구 안내문에는 이곳을 '영국의 위대한 정원(Great Gardens of Britain)'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조금 거창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자 왜 그렇게 불리는지 금방 알 것 같았다.

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무였다.

오래된 나무들이 정원 곳곳에 서 있었고, 그 아래로 계절을 따라 피어난 꽃들이 이어졌다.

화려하게 꾸민 정원이라기보다 오래 살아온 정원을 천천히 걸어보는 느낌이었다.

영국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많지만 히드코트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꽃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이곳에는 한 사람의 취향과 오랜 작업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Hidcote Manor Garden.

 

한 사람이 만든 정원

히드코트를 만든 사람은 로런스 존스턴(Lawrence Johnston)​이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식물을 수집했다.

남아프리카와 중국, 일본, 히말라야 등에서 씨앗과 묘목을 가져왔고, 그렇게 모은 식물들을 히드코트에서 키웠다.

누군가는 여행을 다니며 사진이나 기념품을 모으지만, 존스턴은 식물을 가져와 정원에 심었다.

그가 만든 정원의 특징은 식물을 한곳에 모아놓지 않았다는 데 있다.

높은 생울타리로 공간을 나누고 각각 다른 분위기의 정원을 만들었다.

문 하나를 지나면 풍경이 달라지고, 모퉁이를 돌면 전혀 다른 식물들이 나타났다.

같은 정원을 걷고 있는데도 계속 새로운 공간이 나왔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정원을 만드는 일이 단순히 꽃을 심는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자라고 공간이 자리 잡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존스턴 역시 하루아침에 지금의 히드코트를 만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 식물을 들여오고, 심고, 옮기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과 나무 사이에는 그렇게 쌓인 시간이 있었다.

                                                             로런스 존스턴(Lawrence Johnston)​이 정원사들과 함께(중앙 강아지를 안고 있는 이)

                                                                                   사진 출처: National Trust

 

 

기다려야 하는 정원

식물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오늘 심은 나무가 내일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계절을 기다리고, 나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다시 꽃이 피기를 기다려야 한다.

히드코트를 걷다 보니 이 정원의 아름다움은 꽃의 종류나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가꾸고 기다린 결과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문득 우리나라에서 건너온 식물도 있을까 궁금해졌다.

영국의 오래된 정원에서는 한국이 원산지인 식물들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 이런 정원에서 우리 산에서 자라던 나무를 발견한다면 꽤 반가울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식물 하나하나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어느 벤치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셨다.

멀리서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짧은 시간 안에 하나라도 더 보려고 서두르게 된다.

하지만 정원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걷다가 앉고, 꽃을 보고, 다시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정원을 한 바퀴 돌아 입구로 향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계절만이라도 이곳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아침에는 정원을 산책하고, 낮에는 나무와 꽃을 돌보고, 저녁에는 벤치에 앉아 하루가 저무는 모습을 보는 생활.

여행 중 잠깐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에는 비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래서 히드코트는 자연스럽게 다시 와야 할 곳이 되었다.

다음에는 날씨가 좋은 계절에 하루를 잡고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치핑 캠든에서는 오래된 마을을 지켜온 사람들의 흔적을 보았다.

히드코트에서는 한 사람이 식물을 모으고 심으며 만들어낸 정원을 걸었다.

둘은 전혀 다른 곳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

마을에는 그것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고, 정원에는 오랫동안 식물을 가꾼 사람이 있었다.

히드코트를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꽃보다 오래된 나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이번에는 꽃보다 나무부터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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