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 여행|론다를 떠나 세비야 골목으로 들어가다.


우리는 론다에서의 마지막 아침 산책을 마치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긴 뒤, 론다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며칠 동안 비에 젖어 있던 론다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맑은 햇살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버스에 올라타자, 창밖 풍경이 천천히 멀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세비야행 버스는 도시 외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세비야 도착, 그리고 시작된 골목 미로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빽빽하게 붙어 선 집들이었다.
골목은 생각보다 훨씬 좁았고,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남편의 ‘직진 본능’이 발동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자신만 믿으라며 앞장서더니, 순식간에 골목 안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택시에서 내린 자리조차 벗어나기 망설여졌지만, 다시 돌아온 그는 왜 안 따라오냐며 오히려 성을 냈다.
나도 화가 났지만, 마음속으로 참을 忍자를 몇 번이고 새기며 말했다.
“일단 집주인한테 전화부터 해봐.”
하지만 그는 계속 직진할 기세였다.
결국 내가 버럭 화를 내자 마지못해 전화를 걸었고, 집주인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뒤쪽에서 대문이 열렸다.
집주인이 환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Hola, señor H!”
우리는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바로 뒤였구나?”
세비야 골목 안 작은 숙소

그렇게 우리는 거대한 나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두꺼운 벽과 철제 의자가 놓인 작은 공간은 오래된 세비야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숙소 앞 광장에는 오렌지 나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덩굴식물이 길 위를 가득 덮고 있었고, 골목 끝에서는 네모난 종탑을 얹은 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는 어쩐지 정겹게 느껴지는 여섯 개의 쓰레기통이 줄지어 서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책을 읽는 소녀 조형물이 놓인 작은 광장이 나타났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나만의 좌표

혹시 길을 잃더라도 돌아올 수 있도록, 나는 골목마다 작은 기준점들을 머릿속에 새겨 두기 시작했다.
오렌지 나무.
덩굴 그림자.
종탑.
책 읽는 소녀 조형물.
세비야의 골목은 미로 같았지만, 동시에 이상할 만큼 사람을 천천히 걷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햇살과 그림자, 오래된 벽과 오렌지 향기까지.
모든 풍경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스며들었다.
늦은 오후의 세비야 대성당



늦은 오후, 우리는 세비야 대성당 앞으로 향했다.
광장은 여전히 밝고 활기찼다.
거대한 첨탑은 기울어가는 햇빛을 받으며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따뜻한 햇살은 광장 위로 부드럽게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햇살을 몸에 담듯 느릿하게 걸었고, 마차는 달그락거리는 바퀴 소리를 남기며 광장을 천천히 지나갔다.
벤치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까지.
세비야의 오후는 서두르지 않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세비야 첫날의 작은 선술집

우리는 대성당 풍경 감상은 내일로 미루고, 골목 안쪽 작은 선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 안으로 스며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접시 부딪히는 소리, 와인잔 너머로 들려오는 스페인어가 저녁 공기 속에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세비야의 밤은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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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 5, 론다 RO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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